강한진 나음연구소 소장
강한진 나음연구소 소장

금요일이면 손자들을 만나러 가기 위한 쇼핑을 한다. 아들네와 한 시간 거리에 떨어져 사는 우리는 격주로 손자들을 만난다. 

녀석들은 만나자마자 내게 범인, 악당, 상어를 시킨다. 저들은 경찰, 정의의 우주 전사, 용감한 선원이다. 그리고 나를 쫓는다. 그렇게 부대끼고 뒹굴며 생기는 것, 그것이 핏줄의 느낌일까. 아들을 키울 때는 사실 크게 느끼지 못한 것이다. 삶이 바빠서? 조금 나이가 들고 바쁨과 치열함을 내려놓아 느낀다니, 새삼스럽다.

한 달쯤 전, ‘깨똑!’ 소리와 함께 아들의 메시지가 왔다. 전화기를 속에는 손자 녀석이 뿌듯한 표정으로 서 있었다. “할아버지 생신 축하해요. 사랑해요”라는 친필 메시지를 붙여서 만든 카드를 들고 있었다. 공들여 만드느라 일주일이나 걸렸다는 녀석 인생의 최초 편지였다. 그것을 서재 책장의 제일 눈에 띄는 곳에 반듯이 세워 놓았다. 

며칠 후에는 영상전화가 왔다. 버튼을 누르니 손자 녀석이 “할아버지~”하고 불렀다. 놀라며 반기니 주말에 오느냐고 확인하고는 무슨 과자 이름을 말한다. 메모를 하는데 통화 소리를 들은 아내가 쫓아 나와 전화기를 가로채고 말을 건다. 손자는 팔을 들어 올려 사랑해요~ 사인을 보내고, 아내는 완전히 녹아버린다. 녀석이 영상통화 방법을 배우는 모양이다.

저녁 무렵 산책을 했다. 앞으로 더 다양한 연결 방법이 생겨나리라고 생각하며 걷는데 어두워지는 저녁 공기 사이로 꽃이 보이는 듯했다. 어른 키만 한 언덕 위 봉분 앞에 꽃다발이 놓여 있었다. 이 추워지는 날에 무덤 주인을 그리워하는 누군가가 다녀간 듯했다. 장인어른 묘를 이장한 일이 생각났다.

얼마 전, 봉긋한 봉분(封墳)에 계시던 장인어른을 고급스럽고 네모반듯한 대리석으로 치장한 평분(平墳)으로 이사해 드렸다. 영화에서 보는 품위 있는 서양식 분묘였다. 둥글고 자그마한 항아리에 어른의 흔적이 담겨서 옮겨지는 것을 지켜보면서 나는 장인어른의 백(魄)이 잘 오셨을까, 백(魄)은 흙 속에 있고 싶어 한다던데 흙 없는 저 항아리에서 잘 지내실까, 여러 가지 생각이 맴돌았다.

누군가 말하기를 사람이 죽으면 영혼(靈魂)은 혼백(魂魄)으로 나뉘고, 혼(魂)은 구름을 따라 하늘로 올라 흩어지는데 백(魄)은 뼈와 함께 흙 속에 묻혀서 후손들과 소통을 한다고 한다. 그런데 요즘 매장 방식이 달라지며 갈 곳이 없어진 백(魄)이 많아지고, 그래서 후손들과의 커뮤니케이션도 점점 끊어진다는 것이다. 그러면, 내가 죽으면 손자들과 연결되는 지금의 통로들은 물론이고 영혼으로 소통할 수 있는 경로도 사라져서 영영 끊기게 되는 걸까. 마음속에 불안함이 서서히 자라났다. 

돌아오는 길에 쇼핑하고 손자들을 만나러 갈 준비를 했다. 일전에 사 둔 장난감도 꺼내어 함께 정리하다가 불쑥 할아버지가 기억났다. 깊은 어둠에서 불쑥 떠올라서 깜짝 놀라고 멍한 기분이었다.

큰 키에 얼굴이 검고 손이 두툼했던 할아버지. 배포가 크고 왁자지껄한 그분은 가는 곳마다 나를 데려가고 싶어 하셨다. 할아버지가 사람들에게 나를 내어 보이며 자랑하실 때는 우쭐했고 맛있는 것도 사 주시는 것이 좋았다. 

얼근히 취해 돌아오시는 할아버지 손에는 가끔 장난감이 들려 있었다. 그리고 나와 이마를 맞대고 눈을 바라보면서 웃으셨다. 술 냄새를 풍기는 할아버지의 눈이 소처럼 굵었다. 그러고 보니 나도 이마를 맞대고 손자의 눈을 바라본다. 이 아이와 오래 연결되었으면 하고 생각한다. 오래전 할아버지는 무슨 생각을 하셨을까. 

그런데 나의 할아버지에 대한 내 기억은 초등학교 저학년 무렵에 멈추어 있었다. 당황스러움과 미안함이 파도처럼 밀려들었다. 급히 집안 곳곳을 찾았으나 할아버지의 모습이나 흔적이 담긴 어떤 것도 찾을 수 없었다. 물먹은 창호지처럼 마음이 가라앉았다.

방학이 다가오면 나를 기다리시고 반기신 할아버지, 언제 지워졌는지도 모르다가 이제 불현듯 떠올린 나. 손자 녀석과 이마를 마주하며 죽은 뒤에도 이어졌으면 하는 나, 이제 학교엘 다니고 제 삶에 바빠 나를 차츰 잊고 살 녀석. 그러다가 영화 시네마천국의 장면처럼 문득 떠올리기나 하면 도리어 고마울지도 모를 일이다.

물이 거슬러 거꾸로 흐르지 않듯이 피 또한 아래로 흐르는 것. 그것이 자연의 섭리요 신이 정한 규칙일 것이다. 그래서 나는 아버지와 할아버지, 그 위의 조상들이 쌓아놓은 사랑을 거저 내려받으며 자랐다. 어쩌면 신은 인간의 유전자 속에 내려받은 그것을 다시 아래로 흘려서 내리라는, 갚지 못한 미안함과 죄스러움까지도 사랑으로 바꾸고 얹어서 자식에게 내리라는 내리사랑의 법칙을 심어 놓으신 지도 모르겠다. 지금 나는 그 한 부분을 경험하는 중이고.

자리에 앉았다. 내리사랑과 치사랑의 비율이 100대 0.7이라는 수필가 김효재 님의 글이 생각났다. 참 맞구나 싶었다. 비율 차이가 좀 큰 것이 살짝 서운하겠다 하는데 책장에서 나를 지켜보던 손자의 편지가 말을 걸어왔다. 

“할아버지, 사랑해요~.”

아, 충분하구나. 저 한마디로 충분한 것이로구나. 서서히 마음이 가라앉았다. 마음속을 뒤져 할아버지에 대한 기억과 사랑하는 마음을 찾기 시작했다. 

100이 0.7에게 큰 위로를 받는 저녁이었다.

▶필자는 마음을 연구하는 곳 나음연구소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소통이 필요한 분은 언제든 메일(hjkangmg@hanmail.net)을 보내 주시기 바랍니다.

[필자소개]

나음 강한진 소장은 경북대학교 공대에서 전자공학을, 서강대학교 경영대학원과 상지대학교 대학원에서 경영학을 공부했다. 국내 기업에서 엔지니어와 관리자 경험을 쌓고 지금은 나음연구소를 세워 운영하고 있다. 대인관계와 소통, 특히 갈등을 긍정적인 계기와 에너지로 전환하는 지혜에 관심을 두고 연구와 강의 활동을 하고 있다. 우리의 미래는 가정과 학교, 청년에게 있다고 믿으며, 가족의 평화와 학교(교사-학생-학부모)의 행복, 청년의 활력을 키우기 위한 일을 하기 위해 고민하고 있다. 

<위 글은 외부 기고 칼럼으로 본지의 편집 방향과 무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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