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희선 일본 전문 칼럼니스트
정희선 일본 전문 칼럼니스트

개호(介護)란 간병과 수발 등을 위해 고령자를 곁에서 돌보는 일을 총칭하는 일본어이다. 고령화 사회가 되면서 필시 직면하게 되는 사회적 문제 중 하나는 개호이다. 인간은 누구나 나이가 들고 신체가 쇠약하게 되면 누군가의 돌봄이 필요하게 된다. 고령화가 심각해지고 1인 고령가구 또한 증가함에 따라 일본 정부는 개호를 사회 전체에서 지원하는 것을 목적으로 2000년 개호보험제도를 신설했다. 개호를 개개인이 책임지는 것을 넘어 국가가 나서서 함께 해결해야 할 문제로 인식하기 시작한 것이다. 

개호보험제도가 일본에서 신설된지 약 20년이 지난 지금, 이제 민간 기업에서도 개호문제의 심각성을 직면하고 나서기 시작하고 있다. 

카레와 조미료를 주로 판매하는 하우스 식품 그룹(House Foods Corporation)은 2021년 9월부터 전사원에게 개호 연수를 실시하기 시작했다. 국내 그룹 15개사에 근무하는 직원 4300명을 대상으로 온라인 동영상 등을 활용하여 연수를 실시하고 있다. 젊은 사람을 포함한 전 사원에게 개호 연수를 적극적으로 실시하는 기업이 드문 상황에서 하우스 식품 그룹의 행보가 주목받고 있다. 

연수에서는 개개인별로 부모의 연령이나 가족 구성원 등의 정보를 통해 부모를 돌봐야 하는 시점이 어느 정도 임박했는지, 그리고 개호를 해야 될 상황이 닥칠 경우에 경제적 및 시간적인 부담은 어느 정도일지를 가시화하여 직원들이 구체적인 이미지를 가질 수 있도록 돕는다. 그리고 개호와 업무를 어떻게 동시에 해낼지, 가족과의 관계는 어떻게 변할지, 필요한 개호 비용 등에 대하여 배운다.

하우스 식품 그룹에 근무하는 한 30대 직원은 닛케이 신문과의 인터뷰에서 개호 연수를 받아두길 잘 했다고 말한다. 실제로 그가 갑자기 가족을 돌봐야할 상황이 발생했기 때문이다. 개호에 관한 지식, 일과 개호를 어떻게 양립 시킬지 등에 대한 지식을 얻었기 때문에 침착하게 대응할 수 있었다고 한다. 

하우스 식품이 본격적인 개호 대책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한 것은 2020년 가을이다. 개호와 업무의 양립을 지원하는 컨설팅사인 릭시스 (LYXIS)는 일본 전국의 40세 이상 사원 약 1만명을 대상으로 개호 관련 현황을 조사하였다. 사원의 10.3%가 현재 개호 중이며 56.4% 가 3년 이내에 개호에 직면할 가능성이 있다라는 결과가 나왔다. 40~50대로 한정하면 3년 이내 개호에 직면할 가능성이 있는 사람의 비율은 약 60%에 달했다. 

이러한 조사 결과를 접한 하우스 식품의 경영진은 '이렇게 많은 사원이 개호에 직면할 가능성이 있는가'라며 무척 놀랐다고 한다. 하우스 식품의 한 간부는 닛케이 신문 인터뷰에서 다음과 같이 전한다. 

"특별히 임박한 과제라고 느낄 기회가 없었다. 하지만 조사 결과를 보고 위기감이 더해졌다. 사원이 혼자서 개호라는 짐을 끌어 않지 않도록 환경을 시급하게 개선하지 않으면 회사의 성장이 위험하다고 느꼈다"

하우스 식품은 우선 릭시스와 협력하여 개호 연수를 통해 일과 개호를 양립해야 되는 상황이 올 수도 있다는 점을 전 사원에게 주지 시킨다. 이는 현재 개호 중인 사원에 대한 이해도를 높이는 계기도 된다. 하우스 식품은 개호 목적으로 재택근무를 포함한 유연한 근무 방식을 할 수 있도록 제도나 환경을 마련할 계획이며, 이는 개호를 위해 회사를 이직하는 상황을 막는 목적도 있다.  

일본의 베이비붐 세대인 ‘단카이 세대’가 후기 고령자 (75세)가 되는 소위 '2025년 문제'가 가까워지면서 핵심 사원의 대부분이 일과 개호의 양립에 직면하게 된다. 40~50대 사원의 약 60%가 3년 이내에 가족의 고령화된 부모를 돌봐야 할 '개호'에 직면할 가능성이 있다는 점은 커다란 사회적 부담이자 기업에 있어서는 또 하나의 경영 리스크가 된다. 

'경영 리스크'라고 지목하는 이유는 업무와 개호를 동시에 진행하는 사람의 상당수가 회사에서 핵심업무를 담당하는 40~50대에 집중되어 있다는 점이다. 릭시스의 조사에 의하면 현재 일과 개호를 동시에 진행하는 사람 중 60%가 ‘개호로 인한 물리적, 심리적 부담이 괴롭다’고 의견을 전했으며, 이 중 반 정도는 ‘일의 퍼포먼스가 내려갔다’고 밝혔다. 현재 개호 중인가 아닌가에 관계없이 조사 대상의 30%정도는 ‘개호를 하면서 지금의 일을 계속 할 수 없을 것이다’며 불안을 느끼고 있다. 

개호는 언제, 누구에게 닥칠지 파악하기 어려울 뿐만 아니라 회사에 적극적으로 알리고 해결책을 구하는 사람도 적다. 이에 따라 문제가 수면 아래에서 심각화 되고, 혼자서 고민하다가 이직으로 이어지는 경우도 있다. 하우스 식품은 이러한 사원들의 ‘숨은 개호’를 없애려고 하는 것이다.  

하우스 식품 뿐만 아니다. 종합상사인 마루베니는 개호를 지원하는 비영리 조직 (NPO)과 계약해 2012년도부터 누구라도 상담 및 전문가의 지원을 의뢰할 수 있는 체제를 마련하였다. 금전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는 기업도 있다. 미국의 금융기관인 골드만삭스의 일본 법인은 전 직원을 대상으로 가족 1명당 연간 100시간까지의 개호 서비스 비용을 회사가 전액 부담하고 있다. 관리직이 간병을 이유로 퇴사하자 이러한 제도를 만들었으며, 현재는 수천 명의 사원 중 매년 50명이 이용하고 있다. 

최근 근무시간 단축이나 재택근무 등 일하는 방식은 다양해지고 있지만 개호와 업무를 양립하기 위한 제도에 관해서는 인지도가 낮을 뿐만 아니라 필요성에 대한 이해도 늦어지고 있다. 한 예로 일본에서는 종업원 30명 이상이 근무하는 회사의 90%가 개호 휴가 제도를 도입했지만 실제 개호 휴가를 사용하는 취득률은 10%에 미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육아와 마찬가지로 개호 또한 많은 직원들에게 있어 피할 수 없는 삶의 과정이다. 고령화가 진전되면서 개호의 부담을 경감하기 위한 공적 지원 제도 뿐만 아니라 기업을 포함한 민간에서의 적극적인 지원도 필수적이 될 것이다. 

<위 글은 외부 기고 칼럼으로 본지의 편집 방향과 무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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