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성재의 멘탈 레시피] 소통을 만드는 질문 'How'

2000년대 중반 무렵, 강남 테헤란로 한 사무실에서 벌어진 일이다. 

어느 나른한 가을 오후 50대 중년의 두 남자가 목에 핏대를 세우고 서로의 멱살을 잡았다. 빳빳하게 다린 하얀 와이셔츠를 입고 반짝이는 구두를 신고 있는 이 두 사람은 왜 싸우고 있는 것일까? 

한 명은 재무와 물류를 담당한 임원, 다른 한 명은 새로 입사한 영업 총괄 임원이었다. 문제의 발단은 새로 수주한 오더를 재무 담당 임원이 업체의 신용도가 낮다며 오더 진행을 거부했기 때문이었다. 영업 실적을 달성해야 하는 임원 입장은 난처했다. 물류 측면에서도 오래된 재고를 출하하지 않는다고 끊임없이 영업팀을 압박하고 있었다. 쌓이고 쌓인 감정이 결국 폭발했다.

사람은 크게 몽상가, 현실주의자 그리고 비판자 이렇게 세 부류의 사람으로 나눌 수 있다. 비판자는 세상을 '문제 프레임'으로 바라본다. 무엇이 문제야? 누구 잘못이야? 원인이 뭐야? 이런 질문들이 비판자의 머릿속에 항상 자리 잡고 있다. 이런 '문제 프레임'은 상대가 자신에게 복종하던지 아니면 거부하는 이분법적 상황으로 몰고 간다. 갈등이 첨예하게 대립된다. 

특히 비판자의 날카로운 말이 상대의 정체성을 향하게 되면 상황은 심각하게 돌변한다. 예를 들어, '오타도 많은 걸 보니 일을 서툴게 처리했군요'라고 말하는 것과 '당신은 매사가 서투른 사람이야'라고 말하는 것은 차원이 다른 문제다. 비판자의 이런 말에 지속적으로 노출되다 보면 속된 말로 멘탈이 탈탈 털리게 된다. 세계적인 NLP 코치 로버트 딜츠는 이것을 두고 '방해자(Spoiler)'를 넘어서 '심리적 살인자(Killer)'라는 표현까지 사용했다.

밥을 왜 이렇게 빨리 먹니? 손 씻고 밥 먹어야지 요즘 코로나가 난리인데? 일찍 좀 일어나라? 방 좀 치워라? 집에서 딸에게 무심코 내가 자주하는 말들이다. 이런 말을 듣는 딸 입장에서 생각해 보면 내 말을 받아들이고 복종하거나 또는 거부하며 반항하는 두 가지 선택권밖에 가질 수 없다. 아쉽게도 딸은 항상 거부하거나 반항하는 쪽을 택한다.

어떻게 하면 이런 비판자를 내 인생의 카운셀러로 바꿀 수 있을까? 로버트 딜츠는 아래와 같은 3가지 질문을 비판자에게 하라고 조언한다. '누구의 문제(Who)', '무슨 잘못(What)', '왜(Why) 그랬는지가 아니라 어떻게 하면(How)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을지' 진실되게 물어보라고 제안하다.

당신이 비판하는 것은 무엇인가요? 당신의 긍정적 의도는 무엇인가요? 궁극적으로 어떤 것을 달성하고 싶은가요? 그렇게 하려면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딸에게 잔소리를 하는 엄마 아빠의 긍정적 의도는 무엇일까? 딸에 대한 사랑, 건강 그리고 성장이다. 이것을 심리학에서는 심층구조(Deep Structure)라고 한다. 

그런데 일상적으로 말하는 잔소리는 표층구조(Surface Struture)다. 잔소리를 듣고서는 심층구조를 파악할 수가 없다. 밥 천천히 먹어라. 일찍 일어나라 이런 말에서 딸이 엄마 아빠의 사랑을 발견하기란 매우 어렵다. 말글대로 너무 깊숙이 숨겨져 있기 때문에 찾을 수가 없다. 오히려 자신을 구속하고 제약하는 훼방꾼으로만 받아들이기 십상이다.

재무와 물류 담당 임원의 긍정적 의도는 무엇일까? 회사의 성장과 번영이다. 재무적 건전성과 효율적인 물류 시스템을 통한 회사의 발전일 것이다. 물론 KPI(Key Performance Factor, 직원의 실적을 평가하는 지표)에 불량채권을 최소화하고 물류비용을 감소시키는 항목이 있기 때문에 개인의 보너스와 연결된 부분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비평가의 '문제 프레임' 대화 방식으로는 그의 긍정적 의도를 다른 사람들이 잘 알아차릴 수가 없다.

오늘 아침밥을 먹는데 식탁 위에 놓여있던 딸 전화기가 부르르하며 온몸을 떨었다. 매일 함께 학교에 가는 친구의 전화였다. 평상시 밥을 빨리 먹던 딸이 이번에는 국에 말은 밥을 물 마시듯 입으로 밀어 넣었다. 

어떻게 하면 네가 건강하게 밥을 천천히 꼭꼭 씹어 먹을 수 있을까? 

"시간 여유가 있어야지." 

어떻게 하면 아침 시간에 여유를 가질 수 있지? 

"밤에 좀 일찍 자야 되는데." 

그럼 어떻게 하면 잠을 일찍 잘 수 있을까? 

"아빠, 나 지금 늦었어 가야 되거든..."

이렇게 대화를 마치고 딸은 황급히 현관문을 빠져나갔다.

나는 내 심층구조를 딸이 쉽게 눈치챌 수 있도록 '어떻게(How) 질문' 곳곳에 단서를 넣어서 질문을 했다. 딸이 표층구조에서 길을 잃고 헤매는 것을 원치 않기 때문이다. '어떻게(How) 질문'은 생각도 많이 해서 이야기해야 하고 시간도 걸리고 그냥 편하게 몇 마디 잔소리를 하고 싶은 충동이 앞서기도 한다.

우리는 누구나 때론 비판자의 희생양이 되기도 하고 또 다른 어떤 상황에서는 다른 누군가의 비판자가 되어 남을 괴롭히기도 한다. 습관이 안되어서, 어색하다는 이유로 자신의 깊은 속마음, 진짜 원하는 바를 이야기하지 않고 상대방에게 잔소리, 거부, 평가, 비판하는 습관을 그대로 유지한다면 진정한 소통은 멀어지고 갈등의 상처는 깊어질 수밖에 없다.

나성재 CTP Company 대표, (사)한국코치협회 코치
나성재 CTP Company 대표, (사)한국코치협회 코치

[필자 소개]

나성재 코치는 알리바바, 모토로라솔루션 등 다국적 IT기업에서 다년간 근무하였고, 한국코치협회 코치이자, 현 C2P 코칭 컴퍼니의 대표이기도 하다. 또한 NLP 마스터로 로버트 딜츠와 스테판 길리건의 공동 저서인 영웅의 여정(Hero’s Journey) 번역서를 출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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