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1코노미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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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호선의 끝자락 굽은다리역 앞 작은 카페. 일하던 도중에 나왔다는 탈북난민인권연합회 김영희(72세) 여성국장을 16일 만났다. 의자에 엉덩이를 반쯤 걸친 상태로 몇 마디가 오갔다. 연합회 얘기를 시작으로 북한에 두고 온 자식 얘기와 나쁜 생각을 했던 모진 순간을 쏟아냈다. 또 다른 1인 가구인 탈북민에 대한 이야기는 그렇게 시작됐다.

"5년 전 남한으로 얘기하면 시 안에 있는 책임자와 크게 다퉜어요. 퇴직금 문제였는데 그 일을 겪고 나니 더 이상 그곳에서 살기가 싫더라고요. 남한으로 가야겠다는 생각했죠. 가족들과 함께 내려올 계획이었는데 마음처럼 쉽지 않았어요. 결국 이렇게 남한으로는 내려왔지만 혼자 살게 됐네요. 쪽배를 타고 강을 건넌 게 엊그제 같은데 벌써 시간이 흘렀네요." 

몸은 남한에 있지만 마음은 늘 항상 불안 속에 살아야 했다. 북에 두고 온 가족 때문이다. 하루에도 몇 번씩 눈물을 훔친다.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더 그리움은 사무쳐갔다. 남한으로 내려오자마자 몸이 부서져라 일을 찾아다녔다. 브로커를 통해 가족에게 얼마라도 송금하기 위함이었다. 남한에서의 생활은 예상했던 것보다 더 힘들고 고단했지만 살아야 할 이유가 있었기에 하루하루 최선을 다했다. 그러다 북에 있는 아이들이 공안에게 잡혀갔다는 소식을 듣게 됐다. 눈앞이 캄캄해지면서 안면 마비가 시작됐다. 

"우울증이 정말 무섭더라고요. 아이들 생각하니 '이렇게 살아서 뭣하나'싶어 한때는 나쁜 생각도 했었어요. 그 순간에 저를 다시 붙잡아준 것도 아이들이었죠. 아이들 소식이 들려왔어요. 돈으로 어렵사리 공안에게서 풀려났다는 소식을 듣게 됐어요. 그 이후 무척 어렵게 남한으로 내려왔는데 여기서 무너지면 안 되겠다 싶었어요. 오죽하면 안면 마비가 왔겠어요. 살아야겠다는 생각에 여기저기 찾아다녔죠"

안면 마비로 더 이상 일을 할 수 없었던 김 국장이 처음 손을 내민 곳은 통일부가 운영하는 북한 구호 단체였다. 하지만 그곳에서는 이미 지원자들이 너무 많다는 핑계로 물질적인 지원은 어렵다는 답변만 들었다. 두 번째로 손 내민 곳은 지역 주민 센터였다. 이곳 역시 서류 심사가 안 된다는 이유로 지원받지 못했다. 

"일을 할 수 없어서 관리비 넉 달씩 밀렸는데 어느 곳에서도 도와주지 않더라고요. 그때 정말 힘들었던 것 같아요. 2019년 서울 도심에서 40대 여성과 5살 아이가 굶어 죽었다는 소식이 들었어요. 너무 안타까우면서도 그게 저였을 수도 있었어요. 이곳 협회에서도 발붙이지 못했으면 어떻게 됐을지 몰라요."

연합회에서 하는 일은 회원 관리다. 현재 탈북난민인권연합회에는 200여 명의 회원이 등록돼 있다. 이들 가운데 70~80여 명이 활발하게 활동 중이다. 주기적인 모임을 통해 서로를 보듬는다. 

탈북난민인권연합회에서 구호 물품과 음식을 나눠먹는 나눔행사./ 사진=탈북난민인권연합회
탈북난민인권연합회에서 구호 물품과 음식을 나눠먹는 나눔행사./ 사진=탈북난민인권연합회

 

"탈북민은 거의 혼자 사는 1인 가구에요. 혼자 외롭다고 좌절하지 말고 주변에 누구라도 붙들고 하소연이라도 했으면 좋겠어요. 그런 곳이 없다면 탈북난민인권연합회를 찾아오세요. 제가 경험해보니 더 절실함을 알 것 같더라고요. 회원들 처지 잘 알아요. 신경 많이 쓰는 부분이 바로 그런 부분이죠. 마음을 감싸주는 것. 북한 단체 많아요. 알아보면 도움이 되는 곳도 있죠. 제발 나쁜 마음 먹지 말고 찾아다니길 바래요." 

남한에서의 생활은 시간이 흐르면서 익숙해져 갔지만 가족에 대한 그리운 마음은 갈수록 더욱 진해졌다. 

"오늘이 우리 맏사위 생일이에요. 아침에 미역국을 끓이는데 눈물이 너무 나더라고요. 이렇게 좋은 음식과 좋은 환경에서 가족들과 하루라도 같이 살아봤으면 소원이 없을 거 같아요. 통일은 바라지 않지만 왕래 정도는 해줬으면 좋겠어요. 살아서 한 번이라도 보고 죽을 수 있다면 좋겠어요. 코로나 때문에 더 만날 기회가 없어졌죠."

탈북난민인권연합회 김영희 여성국장./ 사진=1코노미뉴스 
탈북난민인권연합회 김영희 여성국장./ 사진=1코노미뉴스 

 

코로나로 인해 가족을 보기 힘들어졌다는 것 뿐만 아니라 최근 급격하게 오른 물가상승이 이들을 더욱 힘들게 만들고 있다. 기초생활수급비로 살고 있는 김 국장은 집세와 핸드폰 비용, 난방비를 지불하면 생활 조차 버겁다.

"기초생활수급비로 62만원 받아서 생활하고 있어요. 핸드폰 비용에 월세와 생활비까지 쓰려면 빠듯해요. 요즘 난방비까지 올라서 걱정이 많죠. 북에 사는 아이들에게 다만 얼마라도 보냈는데 지금은 생활 자체가 어려워요. 그래도 같은 탈북민들끼리 위로 하면서 그렇게 살아요."

탈북민 지원에 대한 개혁에도 목소리를 내본다. 

"코로나19 사태로 사회적 단절의 시간이 길어지면서 가뜩이나 외롭고 힘든 탈북민들이 더 많이 고립되면서 세상을 등지고 있어요. 좀 더 현실적인 지원이 필요해요. 탈북민은 한국사회에 살아갈 수 있는 조건이 매우 척박한 상태에요. 이를 위해 정부에서 적극적으로 나서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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