꼰대 아빠가 MZ세대 딸에게 ⑧연애에 대하여 

강한진 나음연구소 소장
강한진 나음연구소 소장

사귀는 사람이 생겼다는 딸에게 개구리와 전갈 이야기를 들려주면서 교훈을 가장해 잔소리한 적이 있다. 처음부터 좋은 사람을 만나라고 강조하고 싶었다. 그 후 며칠 동안 딸은 생각을 참 많이 하는 듯했다. 그러던 어느 날, 저녁 식사를 마치고 앉아 있는데 딸이 다가와서 조용히 물었다.

“아빠, 근데 어떤 남자가 좋은 남자야?”     

순간, 명치를 맞은 듯 당황스러웠다. 우선 내가 좋은 남자인지 덜컥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혈기 방자한 젊은 시절에는 나보다 잘난 놈 있으면 나와보라며 오만을 떤 적도 있지만 나이 들면서 그런 기백은 경륜이란 이름으로 점점 깎여가고 삶의 무게도 어깨를 눌러 지금은 나쁘지는 않은 사람 정도로 적당히 겸손해져 있었다. 적당히 겸손하고 적당히 비겁해졌다고나 할까. 조금 치사한 듯하지만 곤란한 질문을 피해 가는 작전 중 하나가 질문을 되돌려주는 것이다. 그래서 “그래, 너는 어떤 남자가 좋은 남자라고 생각하니?”라고 되물었다. 딸은 나름대로 이런저런 자기 생각을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어물쩍 딸의 당황스러운 돌직구 질문을 넘겼다.

얼마 전 TV에서 사춘기를 지난 딸이 이성 친구와 교제하는 모습을 지켜보는 아빠들을 봤다. 놀라고, 걱정하고, 화도 내다가 미안해하는 모습이었다. 성격, 스타일, 생각, 행동 모두 다른 네 명의 아빠인데 거의 비슷한 반응을 보였다. 모르던 딸의 면모에 놀라워했고, 어린 줄 알았던 딸의 성숙한 행동을 어색해했다. 무모해 보이는 딸의 선택에는 걱정을, 행복한 모습에는 기뻐 눈물을 보이기도 했다. 다 달라 보이는 아빠들인데 다른 것이 없었다.

여러 해 전 딸의 그 돌발적인 질문에 나는 순서대로 몇 가지를 생각하고 반응했던 것 같다. 제일 먼저 당황스러우면서도 한편으로는 기뻤다. 딸이 커갈수록 서먹하고 조심스러워지는 것 같아 서운했는데 애인이 생겼다고 먼저 털어놓으면서 성큼 다가와 의논하려는 모습이 반가웠다. 딸이 훨씬 내 가까이에 있고 나를 믿고 크게 의지한다는 생각에 기쁘고 울컥했던 기억이 난다.

그 짧은 순간이 지나자 대체 어떤 놈(!!)인지 커다란 궁금함의 풍선이 부풀어 올랐다. 어떤 놈이 내 딸을 홀렸지? 다행히 묻지는 않았다. 만일 물었더라면 질문이 아니라 취조에 가까웠을 테니 물어보지 않기를 잘한 것 같다. (내가 허둥대느라 물어보지 못했을 가능성이 크지만.)

그런데 왜 어떤 놈인지 묻고 싶었을까? ‘혹시 늑대가...?’ 라는 염려가 순간 머리를 치지 않았을까? 자신의 기억을 되돌아봐도 수컷은 어느 정도 늑대 속성('오빠 믿지?' 라는 개그성 유행어로 상징되는)을 가지지 않는가. 

혹시 내 딸이 그런 늑대에게 홀리지 않았나 걱정되었을 것이다. 당연히 아빠가 나서서 보호하고 물리쳐야 한다. 딸의 애인 또는 사위 지원자를 만났을 때 아빠가 의심 짙은 눈초리로 경계하며 엄한 척하는 것도 이 때문일 수 있다. 힘센 척 폼 잡고 술잔을 내밀며 군기 잡는 것도 그런 마음의 작용일 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미 다 자라서 어엿한 여인이고 사랑에 대한 자기의 생각이 있는 딸에게 그런 수컷의 허세는 효과 없고 공허하며 실패할 때가 더 많다. 도리어 감정적으로 반발하게 하고 아빠를 더 멀리하게 한다. 그놈(!!)과 떨어뜨리는 것이 아니라 아빠와 멀어지게 만드는 것이다. 로미오와 줄리엣이라는 모범답안처럼 말이다. 

사실 어떤 남자가 좋은 남자인지 정의하기도 어렵다. 사람에 따라 생각이 천차만별이고 조건과 기준도 너무도 다양해서 길고 복잡해질 수 있다. 그리고 세상 사람 대부분은 좋은 사람들이다. 그렇다면 나쁜 남자만 구분하고 걸러내도 딸의 연애는 훨씬 안전해진다. 그래서 딸이 스스로 전갈을 걸러내는 지혜의 도구를 만들어보자 생각하고 딸이 만나지 말아야 할 남자 유형을 ‘전갈 감별 체크리스트’로 정리했다.     

전갈 감별 체크리스트 – "딸아 이런 사람은 만나지 마라"

1. 자주 뚜껑이 열리고 분노 조절이 안 되는 남자.
2. 지배하려 하고 너그럽지 않은 남자.
3. 책임감이 없는 남자.
4. 비밀 많고 거짓말을 하며 말과 생각이 자주 바뀌는 남자.
5. 자기비하하는 남자.
6. 중독 성향이 있는 남자.
7. 지나치게 의존적이거나 집착하는 남자.
8. 가족과 사이가 나쁘거나 함부로 대하는 남자.
9. 직업이나 장래 계획이 불안정한 남자.
10. 끝맺음하지 않는 남자.     

아빠는 딸에게 다가오는 어떤 위험도 무조건 막으려고 한다. 나쁜 남자는 아빠들의 큰 고민거리다. 주변에 폐를 끼치고 불행을 가져오는 남자는 무조건 피하라고 말하게 된다. 이 리스트는 나의 경험의 범주에서 나온 것이라 허술할 수 있다. 그래도 딸이 한 번만이라도 이 목록으로 점검해봤으면 좋겠다.

남녀의 이끌림이 논리적이고 합리적일 수 있을까? 현대의 뇌과학과 첨단학문은 사랑도 설명 가능하고 예측 가능하다고 하지만 그러면 사랑은 과학이 된다. 나는 사랑이 계속 인간의 신비한 부분으로 남았으면 좋겠다. 각자의 사랑이 만나서 연애를 하게 되면 사랑을 함께 만들게 된다. 사랑만큼 이해와 배려와 상호책임이 중요해지게 된다. 그래서 사랑이 클수록 혼자 더 많이 성찰해야 하고 지혜로워져야 한다. 아빠들은 그 지혜에 사람을 잘 가리는 것도 포함된다고 믿는다.

▶필자는 마음을 연구하는 곳 나음연구소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소통이 필요한 분은 언제든 메일(hjkangmg@hanmail.net)을 보내 주시기 바랍니다.

[필자소개]
나음 강한진 소장은 경북대학교 공대에서 전자공학을, 서강대학교 경영대학원과 상지대학교 대학원에서 경영학을 공부했다. 국내 기업에서 엔지니어와 관리자 경험을 쌓고 지금은 나음연구소를 세워 운영하고 있다. 대인관계와 소통, 특히 갈등을 긍정적인 계기와 에너지로 전환하는 지혜에 관심을 두고 연구와 강의 활동을 하고 있다. 우리의 미래는 가정과 학교, 청년에게 있다고 믿으며, 가족의 평화와 학교(교사-학생-학부모)의 행복, 청년의 활력을 키우기 위한 일을 하기 위해 고민하고 있다. 

<위 글은 외부 기고 칼럼으로 본지의 편집 방향과 무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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