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한진의 리더십 읽기 -바보 천재 삼총사①

우리 주변에는 뛰어난 재능을 가진 기인들이 참으로 많다. 그런데 그들은 얼마 지나지 않아 잊혀진다. 오래 이름을 남기는 사람들에게는 일반적인 뛰어남을 넘는 무언가가 있다. 그들은 어떤 의미 또는 가르침을 주는 사람들이다. 그래서 역사가 누군가를 기억하는 것은 그가 무엇을 우리에게 가르치기 때문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예형(禰衡)은 삼국지에서 비중이 큰 인물이 아니다. 도리어 사소한 인물에 가깝다. 그러나 매우 인상적인 모습을 남겼다. 북 연주를 잘했고 상식을 벗어난 행동을 했으며 특히 살인적인 독설가로서 고작 26년을 살았을 뿐인데 2000년이 지난 지금도 우리는 그의 이름을 기억한다. 그렇다면 그의 삶을 더듬어 본다면 오늘을 사는 우리들에게 뭔가 교훈이 될 만한 것을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1. 출생과 배경

그는 지금의 산동성 지역에서 태어나서 스무 살 무렵까지 성장한 후 난리(당시 세상을 시끄럽게 한 황건적의 난으로 예상)를 피해 형주로 옮겨갔다고 한다. 그리고 20대 초 무렵 당시 조조가 황제를 모셔 세상 주도권을 잡는 시기에 조조와 황제가 있는 허도로 상경한 것으로 추측된다.

그에 대한 평가로 언변과 재능이 있다, 기질이 뻣뻣하고 오만하다, 자신의 뛰어난 재능을 믿고 건방졌다 등이 전해진다. 한마디로 머리 좋고 말 잘하지만 재수 없는 수재였다는 말이다. 옳고 그름을 따지고, 말다툼할 때는 상대에게 모멸감을 주는 격한 말을 해서 사람들이 그와 논쟁하기를 피했다는 말도 있다. 비판적이고 공격적이며 상대방의 결점을 들추며 말싸움으로 이기는 스타일, 즉 죽기 살기식의 진검승부로 덤비는 스타일. 이런 사람들은 유머를 다큐로 받아들여서 죽자고 싸우려고 덤벼든다. 

자신의 재주를 의사처럼 약처럼 쓰지 않고 독사처럼 독으로 쓴다. 자신의 뛰어난 재능과 학식을 주로 상대방을 아프게 하거나 파괴하는데 쓴다. 그래서 뛰어난 사람이라도 썩 환영받지 못하는 것이다. 특히 그 뛰어난 지식과 재능을 남을 위해 쓰지 않는다는 점이 눈에 띈다. 왜 내 것을 남을 써야 하느냐고 한다. 남을 무너뜨리기 위해 지식과 재능, 순발력, 판단력, 예리한 비판의식을 무기처럼 휘두른다. “불평하는 사람과는 사귀지 마라”라는 탈무드 격언은 참으로 의미가 있는 말인 것이다.

2. 시대 상황과 그가 겪었을 좌절과 선택

벼슬자리로 나아가려고 허도에 온 예형은 요즘 취준생들과 비슷한 생활을 한 것으로 보인다. 요즘의 자기소개서와 비슷한 것으로 보이는 명패를 만들어서 품에 넣고 다녔다니 말이다. 그런데 꽤 오래 그런 생활을 했던 것 같다. 품에 넣고 다니던 명패가 지워져서 거의 알아보지 못할 정도가 되었다니 말이다.

당시는 요즘 같은 시험이나 채용절차가 없었고 안면 또는 연줄을 통한 등용이 주된 방법이었다. 관직으로 나가려면 권력자의 문객(세력 집단의 일원)이 되거나 채용을 담당하던 사람과 개인적인 관계를 맺어서 발탁되어야 했다. 그런데 예형은 그런 노력을 그리 하지 않았던 것 같다. 어쩌면 머리는 뛰어났으나 가진 것은 없어서 그들에게 줄 뇌물이 없었을 수도 있다. 예나 지금이나 세상 불공평한 것은 크게 다르지 않으니 말이다.

당시 진군과 사마랑(사마의의 큰 형)은 조조의 휘하에서 인재 발탁과 관련된 일을 하고 있었다. 누군가가 예형에게 진군이나 사마랑을 찾아가 보라고 조언했다. 그러자 예형은 "내가 백정을 따라가야 하는가?"라고 대답했다. 조조나 순욱을 찾아가 보면 어떠냐 하니 그들에 대한 부정적인 감정을 드러내고 독설을 퍼부으며 거절했다. 예형이 그 당시의 주도권을 잡고 있던 조조와 그 세력을 악한 세력이라고 생각하고 있었음을 짐작케 하는 부분이다.

그래도 예형이 전혀 사귀는 사람이 없던 것은 아니었다. "형님으로 모실 사람은 공문거(공융)이요, 아우로 삼을 사람은 양덕조(양수)"라고 말했다니 말이다(끼리끼리 였을까? 이들도 나중에 모두 조조의 손에 죽는다).      

당시 한나라는 거의 무너져 황제는 겨우 조조의 명분으로 쓰이는 신세로 전락해 있었다. 그리고 멀리 지방에서는 원소가 세력을 모아 영향력을 키워서 최대 세력이 되어가고 있는 중이었다. 

예형은 한나라의 신하가 되어 능력을 펼치려는 꿈을 안고 황제가 있는 허도에 왔다. 그런데 와 보니 현실은 좌절로 치달아가고 있는 중이었다. 황실은 껍데기였고 조조 일당이 실권을 잡아 관직으로 통하는 모든 길을 장악하고 있었다. 자신은 높고 지순한 뜻을 품고 대단한 능력까지 갖춘 청정 인재다. 반면 예형의 눈에 조조는 역심을 품은 괴수, 조조의 수하들은 역적에 빌붙어서 권력을 탐하는 벌레로 보인다. 그렇다면 그가 어떻게 했을까. 자신의 앞길을 방해하는 자들의 위선을 들추고 잘못된 점을 지적하며 비판하고 욕이라도 해야 속이 시원하지 않겠는가.

화를 내기 시작하면 점점 더 화를 내게 되고, 욕 또한 할수록 쉽고 거칠어진다. 게다가 예형은 어릴 때부터 입이 사나웠고 비판적 성향도 강했다. 아마 그는 대상을 가리지 않고 욕을 했을 것이다. 그러면서 예형의 욕은 점점 독설이 되어져 갔을 것이다. 

어쩌면 대중들은 예형이 자기들을 대신해서 멋들어진 문장과 말솜씨로 욕을 해 주니 인기가 높았을 수도 있다. 대중들에게 일종의 카타르시스를 제공하는 기능을 한 셈이니까. 대중적 인기를 힘입어 우쭐해진 예형은 더 찰진 욕을 개발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러나, 그런 악담을 하고 다니는 고작 스무 살 넘은 젊은이를 누가 환영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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