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한진의 리더십 읽기 -바보 천재 삼총사④

유표가 형주에서 권력을 안정화하고 강하팔준(江夏八俊)으로 명성을 날리며 명사들과 고준담론을 즐기고 있을 때다. 이른바 세력가로서의 품위 관리 중인 시기. 어느 날 갑자기 조조에게서 폭탄이 하나 넘어왔다. 소문난 명사 예형이었다. 

과연 유표는 폭탄을 보내온 조조의 속셈을 간파하지 못했을까? 아마 유표는 여러 정보망을 통해서 허도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대부분 파악하고 있었을 것이다. 안 그랬다면 무능한 것이다. 어쩌면 예형이 형주에 도착하기 전에 대응 작전을 세워놓고 있었을 것이다.

자신도 제법 글께나 한다고 자부하는 유표였으니 호승심이 발동했을 것이다. 강하팔준답게 세련된 처치를 하려 했을 것이다. 그래서 여러 번 예형과 재주를 겨루려 시도했으나 결과는 완패. 깨끗이 손을 들고 만다.      

그런데 잠시 생각해 보자. 과연 예형은 유표에게 항복을 권유하는 자신의 임무를 적극적으로 수행하려고 했을까? 혹시 미루거나 회피하려 하지는 않았을까? 

유표의 편을 드는 것은 불충이 된다. 왜냐하면 예형은 명목상 황제의 사신이었기 때문이다. 반면 유표에게 항복을 권하는 것은 조조의 속셈을 돕는 일이 된다. 그것은 더 싫었을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일단 뒤로 미루고 시간을 끌면서 기회를 봐야겠다고 생각하지 않았을까? 실제로 예형의 행동은 항복을 권하러 온 사람 같지 않았다. 유표가 그를 명사로 대하고 학문적 교류를 원하니 그것 또한 싫지 않았을 것이다.

이런 일도 있었다. 한 번은 예형이 유표와 이야기를 나누던 중에 잠시 바깥으로 나갔다가 다시 돌아와서 글들을 잠시 살펴보더니 끝까지 보지도 않고 구겨서 땅바닥에 내동댕이쳤다. 유표는 깜짝 놀랐다. 이게 무슨 무례란 말인가. 그런데 예형은 유표에게 정중하게 붓을 달라고 하더니 그 자리에서 잠시만에 그 글들을 다시 그대로 써내는 것이었다. 한마디로 예형의 실력 발휘였다. 유표가 살펴보니 문장이나 글의 내용이 그대로였다. 예형이 실력을 극적으로 발휘해서 강하팔준이라는 유표마저 손들게 한 장면이었다.   

당시 유표는 고립 전략을 취한 것 같다. 원소와 조조 어느 편도 들지 않고 중립적인 위치에 있으면서 형주라는 캐스팅보트 입지의 이점을 극대화하며 영향력을 유지하는 전략이었다. 문제는 그런 유표를 예형은 어떻게 보았을까 하는 점이다. 유표는 황실 종친이면서도 황실의 위협에 눈 감고 침묵해서 결국 조조의 야심을 도와주고 있는 결과가 되고 있다. 결국 유표는 결코 의롭고 지혜롭고 책임을 다 하고 있다고 불 수 없다. 한왕조가 부여한 이 기반을 자신의 안락을 위해 쓰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천재적이고 비판의식이 예리한 예형의 다음 행동은 어떤 것이 될까.  

고슴도치는 잠시 털을 숙였다가도 언젠가는 다시 세운다. 한동안 유표와 잘 지내는 듯했으나 예형은 오만한 태도를 드러내고 모욕을 주기 시작했다. 여러번 그렇게 하자 유표도 점점 포용하지 못하겠다고 느껴졌던 것 같다.    

하지만 유표는 예형을 보낸 조조의 속셈을 알고 있다. 게다가 예형은 황제의 사신이다. 만일 예형을 죽인다면 천하 명사를 죽였다는 비난과 불명예까지 자신에게 쏟아질 것이다. 조조의 악행을 대신해 주는 결과만 될 뿐이다. 여러 가지를 고려해서 유표는 조조가 넘긴 폭탄을 또 다른 사람에게 넘기기로 했던 것 같다. 그렇게 해서 휘하의 강하태수 황조에게 보낸다. 

황조는 성질이 급하기로 소문난 사람이었다. 아마 황조는 예형을 참지 못하고 죽일 것이다. 결국 유표의 분노가 얼마나 컸는지 짐작되는 대목이다.

◇황조의 게임 마무리

폭탄 돌리기에서 중요한 것은 폭탄을 터지지 않게 가지고 있다가 상대방이 받지 않을 수 없고 되돌려줄 수도 없게 넘겨주는 것이다. 예형은 이미 사방에 골치 아픈 천재, 입이 사나운 또라이 독설가로 소문나 있었다. 그걸 알았는지 황조는 예형을 잘 대해 주었다. 예형도 황조에게 전혀 흠잡을 데 없는 완벽한 글을 지어주기도 했다. 그 글을 받은 황조가 예형의 손을 잡으며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이 바로 이것이라며 극찬을 했다니 말이다. 특히 황조의 아들 황역은 예형의 열렬한 팬이었다. 여행도 하고 글도 나누며 어울려 다녔다.

그러나 평화는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고슴도치가 털을 다시 세운 것일까. 예형이 여러 손님이 모인 앞에서 황조의 나쁜 점을 꼬집기 시작했다. 황조가 심하게 꾸짖어도 예형은 그만두기는커녕 오히려 노려보면서 "시끄럽소. 다 죽어가는 늙은이가 무슨 말을 그렇게 하는가?"라며 욕을 퍼부었다.

크게 화가 난 황조가 시종에게 끌어내어 매를 치라 하자 예형이 더 큰 소리로 욕을 퍼부었다. 더 화가 난 황조는 죽이라고 지시한다. 소식을 들은 황역이 달려왔으나 이미 늦었다. 황조도 후회하고 좋은 관에 넣어 후하게 장례를 치러 주었다고 한다. 예형은 앵무주라는 작은 삼각지에 묻혔다고 하는데 세월이 흘러 지형도 바뀌고 호수 밑으로 가라앉게 되어 도시 외곽으로 이장해서 아직도 문화 사적지로 유지되고 있다고 한다.

조조는 예형이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썩은 선비놈의 혀가 검처럼 날카롭더니 결국 자신을 죽였구나"라며 크게 웃었다고 한다. 

예형, 그는 26년을 살았다. 질풍노도와 같은 삶이라고 해야 할까 허망한 삶이라고 해야 할까. 이 극적인 일들은 모두 예형이 조조를 만난 지 고작 몇 년 동안에 일어난 것이었다. 그런데 2000년이나 흐른 지금 우리가 예형의 이름을 기억하고 있다니, 참 묘한 일이다. 솔직히 그리 본받을만한 삶이라고 보이지 않는데도 말이다. 욕 잘해서 기억되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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