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한진의 리더십 읽기 -바보 천재 삼총사⑤ 

몇 해 전 아들이 논산에서 훈련을 마치는 날이었다. 수료식장 주변은 3주간의 훈련을 마친 아이의 모습이 궁금한 부모들로 붐비고 있었다. 모두 비슷한 마음이라 말 붙이기가 쉬웠다. 가까이 계신 분께 "우리 때보다 훈련이 많이 쉬워졌는데도 약해진 아이들이라 견디기 힘들어하네요"라며 말을 걸었다. 그때 그분의 대답이 아직도 선명하다. 

"훈련이 아무리 쉬워졌어도 힘들게 느껴지는 건 우리 때와 크게 다르지 않을 겁니다."

고통의 크기는 가해진 힘의 크기가 아니라 받은 느낌의 총량이다. 현재 밀레니얼들이 느끼는 막막함, 애를 써도 반복되는 실망과 좌절, 불합리와 불확실, 분노의 감정은 2000년 전 예형이 느낀 그것과 많은 부분 비슷하지 않을까. 더 안타까운 것은 그런 환경과 조건을 만든 장본인인 기성세대가 이해하기는커녕 종종 평가절하하며, 나름의 처방이라는 이름으로 또 다른 아픔을 주는 것이다.

그러나 현실은 주어지는 것이지 선택하는 것이 아니다. 그리고 그것에 어떻게 반응하는가에 따라 나의 삶이 결정된다는 것을 예형은 보여준다. 예형의 삶을 짚다 보면 그가 과연 2000년이 지난 지금까지 기억될만한 인물인지 의문이 드는 것은 사실이다. 높은 수준의 가치를 고양하거나 교훈이 되는 행동을 한 사람이 아니다. 당대의 절대 권력자인 조조에게 대놓고 막말했던 거의 유일한 사람이라는 것 외에는 눈에 띄는 게 없다. 그마저도 후대의 역사가나 학자들에 의해 부풀려지거나 왜곡된 느낌이 강하다. 그러나 몇 가지 생각해 볼 점을 준다는 점은 기억할만한 가치를 부여할 수 있는 여지가 될 수도 있을 것 같다.

과연 그는 옳았는가?

예형은 지식인이었다. 자신의 지식과 능력으로 무언가 이루려는 마음을 품고 수도인 허도로 와서 취준생이 되었다. 당시 한나라는 무너지는 중이었고 온 세상이 변화의 소용돌이 속으로 빠져드는 중이었다. 그의 사회진출은 원하는 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는 시대가 잘못 가고 있다고 보았고, 한 왕실을 무너뜨린 원흉이 조조라고 판단했다. 그의 그런 생각은 말과 행동으로 자연스럽게 드러났고 교제의 폭에도 영향을 주었으며, 거듭된 사회진출 실패의 원인으로 작용한 듯하다. 그렇다면 그의 실패는 그의 깊은 지식과 편협하고 경직된 생각, 공격적인 언행의 결합한 결과가 아닐까?

한 가지 주목해 보고 싶은 것은, 반복된 자신의 실패를 집권 세력과 기성체제의 탓으로 돌리면서 비난과 독설의 수준을 점점 더 높여간 것이다. 예형이 그럴수록 주위는 그를 더욱 경계하고 회피했으며, 그러면 예형의 독설은 더 매서워지는 악순환이 반복되지 않았을까.

그의 행동은 적절했는가?

그의 행동은 크게 두 가지 방향이었다. 

첫 번째는 권력자 조조에 대한 비난이다. 그는 조조를 한 황실의 역신이라고 비난했다. 과연 예형의 비난은 맞는 것이었을까? 당시의 시대로 가서 생각을 해 보자. 

당시는 조조가 버림받은 황제를 모시고 새롭게 허도를 도읍지로 정해 세력 확장을 막 시작할 무렵이었다. 한나라의 신하를 자처했고 벼슬은 승상이었으며 죽을 때까지 황제를 몰아내지 않았다. 황제는 거의 20년 후 조조의 아들 조비에게 황위를 양위한다. 이로 보면 조조에 대한 예형의 비난은 타당성이 충분하지 않아 보인다. 지나치게 앞질러 갔거나, 저잣거리의 가십성 여론을 반영한 것이었거나, 두각을 나타내는 조조를 경계하는 주변 제후들의 생각을 반영한 것은 아니었을까? 조조의 정당성 평가에 인색한 후대의 역사가 또는 문학가의 각색일 가능성도 크다.

두 번째 방향의 행동은 주변과의 관계 형성이다. 당시의 인재 드용은 가문이나 인맥을 통해 이루어졌기 때문에 폭넓은 관계를 맺는 것이 필요했다. 그런데 예형은 공융과 양수 외에 긍정적인 관계를 맺은 사람이 별로 없으며, 주위로부터 기피 대상이 되다시피 했다. 그리고 형주의 유표와 황조에게 보내어졌을 때를 보면 처음에는 예의를 갖춘 관계로 시작했다가 어느 정도 지나면 모욕적으로 행동을 해서 관계를 무너뜨리는 패턴이 반복되었다.

그의 비난과 독설은 상대방의 잘못이나 오류에 대한 것이 아니라 인격에 대한 공격이었다. 그러한 그의 행동들은 'I’m OK, You’re not OK'라는 생각과 상대방의 관계 속에서 'Kick Me Off'라는 각본을 설정하고 있는 인생 태도를 떠올리게 한다.

'Kick Me Off' 각본을 설정한 사람은 상대방을 강자요 가해자로, 자신은 약자요 피해자로 설정하고 대인관계에 임한다. 그리고 설정한 그 전제대로 상황이 돌아가서 결국 자신이 약자이며 피해자라는 것을입증하고 보여주려고 한다. 예형이 독설과 돌출 행동으르 해서 관계를 깨뜨리고 결국 피해자의 결과를 맞은 것도 자신이 설정한 인생 각본에 맞게 상황을 만들어간 것은 아닐까. 

삼국지강의를 저술한 이중텐(易中天) 교수는 그런 예형을 "심리적 변태라고 불러 마땅해 보인다"라며, "그는 도를 넘은 거만 때문에 죽은 그저 망할 놈의 자식이다"고 혹평한다.

그런 삶이었을지라도 예형은 우리에게 다음과 같은 몇 가지 생각할 점을 준다.   

첫째, 지나친 자신감은 가끔 독이 되곤 한다. 자신감은 어려움을 이길 수 있게 하지만 지나친 자신감과 오만이 결합하면 독이 된다. 반대로 지식을 바탕으로 한 능력에 겸손함이 곁들여질 때 유능함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예형의 지식과 능력에는 그 겸손함이 함께 하지 않았다.  

둘째, 자신이 바꿀 수 있는 것과 바꿀 수 없는 것을 가리는 지혜가 필요하다. 그 지혜가 있어야 내가 무엇을 할 것인가를 제대로 판단할 수 있다. 절해고도로 귀양을 갔던 당대 최고의 학자 정약전이 절망의 끝자리에서 쓸모없어 보이는 어부들의 지식을 모아서 어류 백과사전인 자산어보를 남겼다. 내가 서 있는 자리에서 나의 지식과 능력을 무엇을 위해 어떻게 사용할 것인지 생각하고 실천했던 지식인의 삶의 모범이다. 원망하고 비난하며 독설로 자신의 지식과 능력을 무모하게 날려버린 예형과 너무나 대조되는 모습이다.

셋째, 비난은 상대방을 변화시키지 못한다. '반대'가 강해지면 '비판'이 된다. 비판 속에는 공격 의도가 들어있다. 대립이 더 강해지면 공격도 강해져 '비난'이 된다. 초점도 점점 사안에서 사람으로 이동한다. '독설'은 완전히 상대방 개인에 대한 공격으로 바뀐 것이다. 문제는 상대방을 변화시키려고 시작한 비판이 비난과 독설이 되어가면 갈수록 상대방은 더 완강해진다는 것. 저항도 점점 더 거세진다. 결국 비난은 어느 누구도 변화시키지 못하는 수준 낮은 방법인 것이다. 비난하지 않으면서 상대방을 변화시키는 기술, 그것이 고수의 대인관계 기술이다.

예형은 뛰어난 사람이었다. 절대 권력자 앞에서의 말과 행동, 유표와 형조가 감동한 문장 실력이 증거다. 그러나 그 뛰어남도 잘못된 태도와 행동 때문에 꽃 피우지 못하고 사라지고 말았다. 예형의 어리석고 비정상적인 삶은 뛰어난 천재일지라도 바람직한 태도와 행동을 갖추지 못하면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될 수 있다는 교훈을 우리에게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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