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한진의 리더십 읽기 -바보 천재 삼총사③

당시 조조가 황제를 모셔서 천하의 중심을 차지하고 있었으나 천하 세력의 선두주자는 원소였다. 그리고 경쟁자 유비는 서주지역을 중심으로 세력을 형성하기 시작했고 유표는 형주에서 제법 세력을 구축해 안정되어가고 있었다.

조조는 조만간 원소와 승부를 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지리적으로 조조의 앞에는 원소가 있고 뒤에는 유비와 유표가 있는 모양이라 마음이 걸렸다. 원소와 한 판 벌리려니 뒤에 있는 유비와 유표가 신경 쓰였다. 그래서 미리 후환을 제거하고 싶은데, 겨울철이라 군사를 이동하기에 적당하지 않아 난감했다. 그러던 참인데 최근 합류해 온 장수와 가후가 형주의 유표에게 명사를 보내서 투항을 설득해 볼 것을 제안했다. 

누구를 보내면 좋을지 의논하는데 책사 순유가 공융을 추천했다. 그런데 공융은 다시 예형을 추천했다. 그리고 한 헌제에게 예형을 추천하는 글도 올렸는데 그 글이 다시 조조에게 내려왔다. 그렇게 해서 조조는 다시 예형을 부르게 된다. 세 번째 부르는 것이다. 하지만 이미 찍힌 녀석을 다정히 맞아줄 리 없다. 와도 앉으라고 하지도 않았다.

불러서 왔는데 찬밥 대우를 하자 예형은 자신의 값어치를 몰라보는 조조를 조롱하려고 했을까, 아니면 자신이 인재라는 것을 드러내고 싶었던 것일까. 하늘을 우러르며 “천지가 넓다더니 어찌 쓸만한 인재가 없을까”라고 탄식한다. 

그러자 조조는 "내게는 수십 명의 천하 영웅과 수하들이 있다"고 응수한다. 

이에 예형은 그 부하를 하나하나 거명하며 '초상집 문상객', '환자 병문안객', '묘지기', '문지기', '서기', '밥주머니', '고기 자루'라고 폄훼한다. 숫제 독설이다. 

그리고 예형 자신을 “천문지리에 능통하고, 삼교구류에 통달했다. 위로 군주를 섬기면 요순과 같은 성군이 되도록 할 수 있으며, 아래로는 공자나 안자의 덕에 견줄만하다”며 어찌 속된 무리와 함께 논할 수 있겠느냐고 대꾸한다. 엄청난 '자뻑', 그러나 말로는 당할 수 없을 정도였다. 조조의 꼭지가 돌지 않을 리 없다.

◇조조의 폭탄 돌리기 묘수

이번에도 조조를 말린 것은 공융이었다. 공융은 조조에게 “예형은 하찮은 자에 불과합니다. 그러한 자가 왕업이 무엇인지 알 리가 있겠습니까”라고, 뱁새가 황새의 뜻을 알 리 없다며 조조의 비위를 맞추고 용서를 청한다. 공융의 말의 의미를 알아차린 조조는 자기 손에 피를 묻히지 않을 방법을 쓴다. 예형에게 형주 유표의 항복을 받아 오면 높은 관직(公卿)으로 삼겠다고 한 것이다. 

당시 유표는 이미 제법 견고한 세력을 형성한 상태. 쉽게 항복할 리가 없었다. 그렇다면 예형과 같은 골치꺼리 독설가를 보내어 유표를 약 올리는 것도 손해날 일이 아니다. 명목상 황제가 명령을 내리는 것이니 예형이 거부하지도 못할 것이다. 골칫거리 예형으로 다른 골칫거리 유표를 처리하려는 것이다. 결국 두 골치꺼리 중 하나는 손 안 들이고 처리하는 묘수인 셈.

그러나 머리 좋은 예형이 조조의 속셈을 눈치채지 못할 리 없다. 가지 않으려고 했다. 그러자 조조는 말 세 필을 준비시키고 좌우에서 팔을 끼워 억지로 말에 태운다. 그리고 동문(후한서에는 남문)에 송별연을 베플라고 조치한다. 마지막으로 예형을 한번 더 비웃어줄 심산인 것이다. 

송별연은 아마도 순욱이 지휘했던 것 같다. 순욱은 모두에게 예형이 나타나도 절대 일어나지 말고 모른 척하라고 한다. 그것도 모른채 도착한 예형은 이상하게 자신을 외면하는 문무백관들을 둘러보다가 갑자기 대성통곡을 한다. 

어째서 곡을 하느냐고 묻자. “앉아 있는 것은 무덤이요 누워 있는 것은 시체 아닌가? 시체와 무덤 사이를 지나가니 울지 않을 수 있겠는가”라고 대답한다. 그리고 자신은 한 왕조의 신하이지 조조의 졸개들과 한 무리가 아니라 말하며 문무백관들을 조롱한다. 

“나는 쥐새끼나 참새새끼일지 몰라도 사람의 성품을 지녔으나 너희들은 똥파리나 벌레에 불과하다”라는 독설까지 날렸으나 사람들은 그의 독설에 맞서지 않고 흩어졌다고 한다.

이 부분에서 삼국지연의와 후한서가 서로 조금 다르게 기록한다. 우선 송별연의 장소를 후한서는 남문, 삼국지연의는 동문으로 기록하고 있다. 후한서는 순욱이 송별연을 지휘했다고 하는데 삼국지연의는 조조가 직접 참석해서 예형과 말싸움까지 했다고 한다. 그러나 그리 중요한 차이는 아닌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왜 그 많은 문무백관이 예형과의 말다툼을 피했을까. 예형만 한 식견과 지식과 말재주를 가진 사람이 없어서였을까? 스물 갓 넘긴 어린 놈의 말뽄새를 바로잡아줄 어른이 정말로 한 사람도  없었던 것일까? 그렇다면 조조의 부하들은 모두 똥파리나 벌레에 불과하다는 예형의 말이 그리 틀린 게 아닐 수 있다. 그러나 당시 허도를 중심으로 한 권력 상황을 보면 조금 짐작이 되는 부분이 있다.

사건이 일어날 당시 천하 세력의 선두주자는 원소였으며 조조는 그 뒤를 쫒는 후보 중 조금 센 세력 중 하나였다. 단지 비교우위요소 중 하나는 황제를 끼고 있는 대의명분 하나 뿐이었다. 그래서 조조 휘하의 신하들도 몰래몰래 원소와 서신을 주고받으며 양다리를 걸치고 있었다. 또한 예형의 사상은 한나라에 대한 충성을 기반으로 한 것이었다. 이로 미루어 짐작되는 것은 당시에 예형과 비슷한 생각을 하는 사람이 제법 있었을 것이라는 점이다.

뿐만 아니라 시중에는 조조가 간웅, 역적이라는 말이 많이 돌아다녔다. 그런 상황에서 예형과 논쟁하는 것은 그리 이익이 되지 않는 일이 될 수 있다. 어린 애와 말싸움 해서 이긴다고 누가 칭찬 하겠는가. 이긴다고 득이 크거나 자랑스러울 일도 아니다. 게다가 상대는 미친개 예형이다. 미친개와 싸우는 일처럼 어리석은 짓이 어디 있는가. 이길 보장도 없으며, 도리어 날카로운 독설에 상처만 입을 수 있다. 문무백관이 독설에 대응하지 않고 자리를 떠난 이유는 무서워서가 아니라 더러워서, 건드리면 파편이 튈 수 있기 때문이었다. 

결국 천하의 재사 예형은 모두가 피하는 폭탄 신세가 된 것이다. 그것도 오물 폭탄이. 

저작권자 © 1코노미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