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한진의 리더십 읽기 -바보 천재 삼총사② 

삼국지 속 예형은 뛰어난 재주와 독설로 일약 화제로 떠오른 인물이다. 그리고 머지않아 허도의 실권자 조조에게도 알려졌다. 조조도 어떤 인물인지 궁금해서 한 번 보려고 했을 것이다. 인재에 대한 욕심이 유난히 컸던 조조였으니 그럴만하다. 예형을 불렀다. 그런데 공식적인 발탁의 과정은 아니고 사적인 면접 기회 정도였던 것 같다.

그런데 어찌 된 일인지 예형이 거절한다. 조조를 역적이라고 생각하고 있어서였는지 아니면 공식적 발탁이 아니라 사적으로 한번 보자고 하는 것이라서 거절한 것인지는 알 수 없다. 더구나 예형이 거절하면서 내세운 이유는 더 이상하다. 자신에게 미치광이 병이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자신은 상대를 가리지 않고 미친 듯 공격하고 비판하는 사람이라서 조조 당신을 물 지도 모른다는 뜻이었을까?     

예형이 거절한 이유가 무엇이든 보기 좋게 거절당한 조조는 기분이 좋을 리가 없다. 그러나 아무리 괘씸해도 이미 장안에 재사라고 소문이 퍼져 있는 예형이라 함부로 처벌할 수 없다. 건방진 녀석을 꺾기는 꺾어야겠고, 그래서 생각해 낸 것이 얼마 후 열릴 큰 잔치에서 북을 치는 고사(鼓史)라는 직책을 주는 것이었다. 잘난 척 까불어봤자 북이나 치는 녀석일 뿐이라고 느끼도록 해서 수치심을 주려는 속셈이었던 것 같다. 예형은 물론 주위 사람들 모두 조조의 속셈을 눈치챘을 것이다. 그리고 예형이 '고사'라는 직책을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런데 예상과 달리 예형은 잔치 자리에 와서 북을 연주한다. 만화가 고우영은 그의 '만화 삼국지'에서 잔치자리에서 신들린 듯 북을 연주하며 그 자리에 있던 모두에게 신랄한 비판을 날리는 예형을 그리고 있다.

문제는 복장이었다. 연주자의 정식 예복이 아니라 그냥 평범한 민간인 차림이었다. 담당 관리가 예형의 평상복 차림을 꾸짖었다. 그러자 예형은 그 자리에서 옷을 모두 훌훌 벗어서 모두에게 알몸을 보인 다음 천천히 새 옷으로 갈아입고 태연히 물러갔다고 한다. 삼국지연의에는 무례하다고 꾸짖는 조조에게 예형이 매우 걸작인 대답을 하는 장면이 나온다.  

“군왕을 업신여기고 황제를 속이는 것을 무례라고 한다. 나는 잠시 부모로부터 받은 형체를 드러내서 희고 깨끗한 모습을 보였을 뿐이다.”

조조가 황제의 자리를 빼앗으려는 마음을 품고 행동하고 있는 것을 책망하는 것이다(나관중의 편향된 시각이라고만 할 수 있을까).

복장은 상대방과 사안, 상황에 대한 태도를 반영하며, 말을 대신하는 커뮤니케이션 기능도 한다. 그래서 드레스코드는 중요한 매너이며 표현 도구다. 그러한 면에서 예형은 조조를 무시하는 마음을 복장을 통해 표현했고, 옷을 갈아입는 장면에서도 알몸을 보여주며 자신이 당당하다는 것을 주장한 것이다. 

그렇게 물러나는 예형을 보고 조조는 쓴웃음을 지으며 '녀석을 수치스럽게 해 주려다 도리어 내가 부끄러움을 당하고 말았다'고 했다고 한다.    

조조에게 예형을 추천한 사람이 공융이라고 한다. 공융은 그 당시 조조의 휘하 신하가 아니라 한나라 천자의 신하 신분이었다. 그러나 조조와 자주 교류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조조의 잔치 자리에서 북을 연주하며 내었던 소동을 공융이 못 들을 리 없다. 당연히 공융은 예형을 불러서 나무란다. 그러자 예형은 자기에게 호의를 가진 사람의 충고를 물리칠 수 없어서 받아들인다. 조조에게 사죄하겠고 한다. 공융은 다시 조조를 만나서 예형이 사과할 겸 뵙고자 한다는 말을 전한다. 조조는 불쾌했으나 마음을 풀고 예형이 오거든 들여보내라고 문지기에게 지시한다. 마음 한편으로는 예형의 사과 방문을 은근히 기대했을 수도 있다. 

그런데 막상 사과하겠다고 찾아온 예형이 전혀 예상 밖의 행동을 한다. 우선 허름한 옷을 걸치고 머리에 두건을 눌러쓴 행색을 하고 왔다. 그리고 영내에 들어와서는 마당에 털썩 주저앉아 지파이로 땅을 치면서 조조를 향한 악담을 늘어놓았다. 기겁한 문지기가 이런 사실을 조조에게 알렸다.

조조는 이번에는 정말 참을 수가 없었다. 사실 예형 하나쯤 처리하는 것은 간단한 일이다. 그러나 예형같은 피라미 때문에 도량 좁은 사람이라고 알려지는 것이 마음에 걸린다. 재능 있는 사람을 죽였다는 비난을 받게 될 수 있다. 닭 잡다가 비단 옷에 피가 튀는 것과 같다. 조조는 괘씸한 예형을 어찌 처리해야 할지 한동안 궁리했을 것이다.    

그런데, 사과하러 온 예형은 왜 저런 엉뚱한 행동을 한 것일까. 조조에 대한 원망이 그만큼 컸을까. 삼국지연의에 예형의 마음을 엿볼 수 있는 대사가 나온다.

“천하의 명사인 나를 북이나 치는 하급 관리로 취급했으니 그것은 양화(陽貨)가 공자를 가볍게 여기고 장창(張倉)이 맹자를 욕보인 것이나 다름없다. 장차 삼왕과 오패가 이룬 대업을 꿈꾸는 자가 이렇게 사람을 가볍게 여기는가?”    

위의 예형의 말을 통해 짐작할 수 있는 것은 두 가지다. 

첫째, 공자와 맹자를 이야기하는 것을 볼 때 예형은 유교적 학문과 철학을 기반하는 사람일 가능성이 높다. 충효가 가치관의 중심이었을 것이고, 조조를 역적이라고 판단하는 기준이 되었을 것이다. 

둘째, 예형이 조조를 삼왕과 오패의 대업을 꿈꾸는 자라고 하면서 자신을 천하의 명사라고 한 것은 자신은 조조 당신을 위해서도 큰일을 할 수 있는 사람이니 제대로 대접하라고 말하는 것 같다. 그런 자신에게 잔치에 와서 북을 치라는 것은 일생일대의 죽음과 바꿀 만한 치욕을 준 것이다. 즉, 자신이 너무나 큰 치욕을 당했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예형에게 북을 치게 해서 수치심을 느끼게 하려고 한 조조의 작전은 성공이다. 예형의 저 독설은 그냥 화 난 개가 짖는 소리에 불과한 것일 뿐이고.    

이제 한 발 옆으로 비껴서서 생각해보자. 저 정도로 상황을 파악하고 있으면서 생사를 좌우할 수 있는 권력자 조조 앞에서 미친개 처럼 독설하는 예형의 행동은 뭐란 말인가? 죽기를 각오한 열사의 행동일까? 죽을 각오를 한다면 못 할 짓이 없다. 그러나 '자뻑'의 극치이고 자신의 감정 콘트롤도 제대로 하지 못하는 또라이 기질로 충만한 행동은 아닐까하는 생각도 해 봐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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