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한진의 리더십 읽기 -바보 천재 삼총사⑥

역사적 사실을 기반으로 한 삼국지와 상상의 허구를 구성한 무협지는 분명히 다르면서도 비슷한 점이 많다. 영웅담, 뛰어난 사람 중심으로 읽으면 무협지에 가까워진다. 역사의 맥락과 흐름, 변화를 함께 살피면서 읽으면 재미 이상의 무엇이 보인다. 

양수는 재사로 유명한 사람이다. 보통 자기자랑하다가 성질 고약한 조조에게 걸려서 '계륵'이라는 일화를 남기고 죽은 재수 없는 천재로 많이 기억한다. 만일 그의 재기 발랄함에 대한 단편적인 이야기로 그를 파악한다면 무협지 읽기로 접근한 것이다. 당시 위진남북조라는 시대상황과 권력자 조조의 움직임, 주변 정치적 흐름들도 연결해 보면 배울 점이 눈이 들어온다. 겉으로 보면 그저 그런 세상의 한 꺼풀 안에는 많은 것이 숨어 있다.   

위진남북조시대(220년~589년)는 중국을 통일한 진나라를 무너뜨린 한나라가 멸망하여 천하가 다시 나뉘어졌다가 수나라에 의해 통일되기까지, 분열과 전쟁으로 넘친 약 370여 년의 기간을 말한다. 당시 한나라에 의해 국가의 정신적 바탕으로 자리잡은 유교는 '왕망의 난' 이후 형식화가 급하게 진행된다. 이로 인해 사회윤리는 붕괴된다. 또 급격한 기후 변화와 유목민의 침략 등이 이어져서 정신적 사회적 물질적으로 매우 어지러운 시기였다. 그래서 위진남북조 시대를 중국의 흑역사라고 부르기도 한다. 이 시대 동안에 진나라와 한나라(기원전 202년~기원후 220년, 총 424년)에 의해 세워졌던 중국이라는 통일제국의 기반은 완전히 해체된다. 

삼국지(220년~280년)는 위진남북조시대의 초기, 즉 진나라와 한나라에 의해 세워진 중국 통일제국의 해체가 시작될 무렵의 혼란을 배경으로 한다. 고려가 조선으로 바뀌는 무렵을 상상해보자. 기존 체제를 옹호하고 존속하려는 세력과 변화를 추구하는 세력이 심하게 갈등하고 치열하게 다툰다. 자기 방어를 위해 집안이 뭉치고 세력이 되어서 호족이 생겨난다. 이 호족 세력은 기존 체제인 왕조의 신하가 되어 기반을 잡은 다음 새로운 변화 세력들과도 적절한 관계를 맺으면서 사회적 영향력을 유지한다.     

양수(175~219)는 건안 연간에 출사했다. 조조가 황제를 모시고 허도에 도읍을 정해서 한나라 조정의 사공 지위에 올라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할 무렵이다. 이 무렵 예형도 허도로 상경했다가 얼마 후 형주로 보내어져서 죽임을 당한다. 

양수의 아버지는 한나라 조정의 강력한 '아빠 찬스'를 가진 사람이었다. 양수는 그 '아빠 찬스'를 써서 낭중(郎中)이라는 문서 관리관으로 공직생활을 시작한다. 그리고 십여 년가량 세상의 흐름을 살핀다. 그동안 조조는 강력한 경쟁자인 원소, 원술, 유표를 모두 굴복시키고 208년에 한나라 사공에서 승상이 된다. 천하는 서서히 조조 유비 손권 셋이 나눠 가진 형국으로 변화한다. 

이런 흐름을 지켜보던 양수는 말을 갈아타야겠다고 결심한 듯하다. 꺼져가는 한나라 왕실을 떠나 조조를 스스로 찾아간 것이다. 드라마 '대장군 사마의'의 초반부에는 조조가 당시 인재들의 무제한 토론 배틀 '월단평'을 지켜보면서 인재들을 눈여겨보는 장면과, 그 월단평에서 제법 영향력을 발휘하는 양수의 모습이 나온다. 조조는 어쩌면 양수가 뛰어난 인재라는 소문을 이미 듣고 알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삼국지연의나 삼국지 정사에는 양수에 대한 일화가 그리 많이 남아 있지 않다. 송나라 유의경(403 ~ 444)이 편찬한 남북조시대까지의 인물과 관련한 일화 모음집인 '세설신어(世說宸語)'에 몇 가지가 전해진다. 그중에는 양수가 조조 휘하의 주부로 있었을 무렵인듯한 이야기가 있다.

양수는 머리 회전이 빠르고 일 처리 솜씨가 좋아서 빨리 끝내고 놀러 다녔다. 양수가 하도 자주 자리를 비우자 하인들이 걱정되었다. 그래서 “조승상이 오시면 어떻게 합니까?”하고 물었다. 양수는 쪽지 3개를 주면서 “만약에 승상이 오셔서 공문 처리를 물으면 첫 번째는 이대로 하고, 두 번째는 이대로, 세 번째는 이대로 하라”하고 놀러 나갔다. 어느 날 실제로 조조가 와서 하인들에게 질문을 했는데 양수가 적어 준 종이에 적혀있는 것들이었다. 그래서 하인들은 그대로 대답을 했더니 아무 지장이 없었다고 한다.

조조가 부하들에게 화원을 하나 꾸미라고 지시했다. 완성되었다는 보고를 받은 조조가 구경하러 가서 한번 둘러보더니 굳은 표정으로 말 없이 화원 문에 活(살 활) 자만을 쓰고는 가 버렸다. 무슨 뜻인지 몰라서 전전긍긍하고 있는데 지나가던 양수가 끼어들더니 “門(문)에다 活(활) 자를 썼으니 그것은 闊(넓을 활) 자, 즉 화원이 너무 넓고 휑해서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하신 것입니다”라고 했다. 그 말대로 화원을 아담하게 좁혀 개조했다. 얼마 뒤 조조가 다시 와 보고는 만족해하면서 어떻게 내 뜻을 알았느냐고 묻자 사람들이 양수가 알려주었다고 대답했다.

이 두 에피소드를 보면 양수가 제법 능력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저 정도의 하급 관리자라면 분명 조조의 눈에 띄었을 것이다. 그런데 조조는 양수의 저 행동들을 보면서 어떻게 느꼈을까가 더 중요하다. '맹랑한 놈이네? 잘 부리면 쓸모 있겠어'라고 생각했을까? 그러면 양수는 기회를 잡게 될 가능성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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