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한진의 리더십 읽기 -바보 천재삼총사⑧

후계자 경쟁은 이기는 것보다 의사결정자의 기준 충족이 더 중요하다. 그래서 경쟁에 이기고도 후계자가 되지 못하는 경우가 얼마든지 생겨난다. 즉 의사결정권자의 기준과 의도를 얼마나 잘 파악하고 충족하는가가 매우 중요한 것이다.    

삼국지를 보면 경쟁의 시작은 조비가 앞서 있었다. 장자 승계의 원칙에서 유리했고, 25살부터 오관 중랑장을 역임하며 경험도 많이 쌓았다. 순욱을 비롯한 많은 대신이 지지했다. 특히 조식의 처가 어른이었던 최염도 조비를 지지했다. 최염이 충고를 하자 조비가 고개를 숙이면서 그 충고를 겸허히 받아들여 사냥을 그만두었다는 일화를 남길 만큼 충효와 기본 도리에  충실하려고 노력하는 태도를 보여서 많은 문신들의 지지도 받았다.

반면 조식은 자유분방했다. 시문 짓기를 좋아하고 호방하며 어울리기를 즐겼다. 조조는 그런 감수성 있는 조식을 더 좋아했다고 한다. 조식 주변에는 정의-정수 형제와 같은 참모들이 있어서 조조의 호의를 끌어내는 동시에 조비의 약점을 드러내어서 뒤져 있는 입지를 만회해 이기려고 노력했다.    

조조는 누구를 선택할지 고민이 많았던 것 같다. 드라마 '대군사 사마의'에는 조조가 곽가, 순욱, 종요 셋에게 의견을 묻는 장면이 나온다. 답답한 마음을 가후에게 털어놓으며 조언을 청하기도 했다. 그러나 많은 중신은 조비를 추천했고, 가후는 장자 승계원칙을 어기며 후계자를 정한 원소의 결과를 일깨우면서 간접적으로 조언한 유명한 일화를 남기기도 했다.     

그런데 조조가 장자승계 원칙을 몰랐을까? 잘 알았을 것이다. 그런데 왜 여기저기에 조언을 청한 것일까? 유고적 전통을 주장하는 신하들이 당연히 조비를 추천하리라는 것을 모르지 않았을 텐데 말이다. 어쩌면 조식에 대한 미련이 매우 컸기 때문일 수 있다. 그 반대로 조비에 대한 많은 대신의 추천을 확인해서 후계자의 기반을 더 단단하게 하려 한 것일 수도 있다. 

이유가 무엇이든, 조조는 두 아들의 경쟁과 주변의 의견 등을 종합해서 결국 조비를 세자로 결정한다. 조식은 경쟁에서 탈락한 것이다.    

그런데 조식이 경쟁에서 탈락했다 해도 아직 게임은 완전히 끝난 것이 아닐 수 있었다. 아직도 조조의 조식에 대한 사랑이 여전했다. 식읍도 두 배인 1만호 가까이 늘려주고 자주 방문했다. 양수도 계속 조식를 보좌하고 있었다.

그 무렵 조식과 양수 두 사람이 주고받은 편지를 보면 조식이 양수에게 정신적으로 크게 의지했고, 양수도 조식을 애틋한 마음으로 대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열일곱 살이라는 나이 차이를 뛰어넘는 브로맨스였다. 이 시기의 일로 보이는 일화가 있다.     

조조는 조식을 총애했는데 조비와 조식 모두를 자주 찾았다. 양수는 조식에게 조조가 군사나 나랏일에 대해 물으면 대답할 말을 10 조목으로 정리해서 답교라는 문서로 만들어 주고 그대로 대답하라고 했다. 조조는 조식이 묻는 것마다 막히지 않고 청산유수로 대답을 하니 처음에는 매우 흡족해하다가 조금씩 의심스러운 마음이 들기 시작했다. 그런데 조비가 양수가 만든 답교를 훔쳐 바쳤다. 그것을 본 조조는 진노했고 조식에 대한 총애하는 마음도 차츰 거둬들이기 시작했다. 

조조가 일행을 거느리고 가다가 '황견유부 외손제구(黃絹幼婦 外孫虀臼)'라는 채옹의 글귀가 새겨진 조아비(曹娥碑)를 봤다. 조조가 그 글의 뜻이 궁금해 주위 책사들에게 물으니 양수가 안다고 했다. 지금까지 양수에게 계속 당했던 조조는 자기가 좀 더 생각해 보겠다고 하고는 생각하기 시작했는데 삼십 리를 더 가고 나서 그 뜻을 깨달았다. 그리고 양수를 불러서 먼저 말해보라고 한다. 

양수는 "황견(黃絹)은 누런색 누에고치 옷감을 뜻하니 곧 색실(絲色)이고 두 자를 합치면 절(絶)이 되고, 유부(幼婦)란 어린 소녀를 뜻하니 소녀, 곧 젊은 여인(少女)인데 합치면 묘(妙)가 됩니다. 그리고 외손(外孫)은 딸의 아들로 딸은 여(女), 아들은 자(子)니 합치면 호(好)가 되고, 제구(虀臼)는 다섯 가지 맛의 음식을 담는 그릇으로 이는 매운 것(辛)을 담는 것이니(受) 합치면 사(辭)가 되어서 이것들을 모두 조합하면 절묘호사(絶妙好辭), 즉 아주 훌륭한 문장이란 말입니다"라고 대답했다. 

조조는 웃으면서 "내 생각과 똑같구나"하고 말했다. 

세간의 '지혜 있는 사람과 지혜 없는 사람의 차이는 삼십 리다'라는 말은 이 일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조조는 이미 조비를 세자로 정했다. 그러면 조식은 조용히 권력의 뒤로 물러서야 한다. 그래서 식읍도 1만 호로 늘려준 것이다. 

그런 시점에 위의 두 일화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저 두 일을 겪으면서 조조는 어떤 느낌을 갖게 되었을까? 아직도 모범 답안을 만들어 주면서 조식을 조종하는 참모, 조조 자신보다 항상 앞서는 양수. 그런 양수가 조조에게는 물론 장차 왕이 될 조비에게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을까, 위협이 될 것이라고 느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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