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인 가구가 점차 다양한 형태로 설 명절을 보내고 있다./사진=1코노미뉴스
1인 가구가 점차 다양한 형태로 설 명절을 보내고 있다./사진=1코노미뉴스

#. 서울 중구에 거주하는 1인 가구 김미현(34세, 가명) 씨는 설 연휴에 오랜만에 고향에 내려가 가족, 친지들과 시간을 보낸다. 주요 역사마다 큰 캐리어와 가족에게 전할 선물꾸러미를 들고 분주하게 움직이는 귀성객으로 북적인다. 고향집에 도착하니 집마다 찾아온 가족들로 주차장이 가득 찼다. 이른 아침 벌써부터 차례상을 준비하는 친지들의 모습이다. 이전엔 며칠씩 손수 음식을 장만해 차례상을 꾸렸는데, 이제는 음식 가짓수도 줄고 가족끼리 평소 즐겨 먹던 음식이 높여 있다. 밥상머리에서는 용돈과 세뱃돈, 덕담이 여전히 오간다. 하지만 "결혼은 언제 할 거냐"는 친척 어른의 잔소리는 스트레스다. 김 씨는 "1인 가구로 사는 삶이 만족스럽다"며 "결혼에 대한 과도한 질문과 잔소리가 부담과 압박으로 이어진다"고 말했다.

#. 서울 성북구에 거주하는 1인 가구 최성준(26) 씨는 연휴 기간 부모님 댁이나 친지 방문을 하는 대신 3일 일하고 마지막 날 하루만 쉰다. 고물가에 당장 고향에 내려가는 비용이 부담되는 상황에서 고수익 단기 알바를 하는 게 낫겠다는 판단이다. 설 연휴 단기 알바자리에는 시급 1만3000원의 청소 아르바이트도 있다. 최 씨가 선택한 건 시급 1만2000원의 세척 아르바이트다. 12시부터 18시까지는 아르바이트를 하고 저녁은 집에서 혼자 먹는다. 마트와 편의점에서 파는 간단하게 조리가 가능한 명절 음식으로 명절 기분도 낸다. 최 씨는 "혼설족으로 명절을 보내는 것이 이제는 낯설지 않다"며 "명절 스트레스도 없고 오히려 돈도 벌고 휴식도 취할 수 있어서 좋다"고 말했다.

설 풍경이 사뭇 달라졌다. 대가족 문화가 핵가족 문화로 전환되면서 북적이던 설 풍경은 옛말이 됐다.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익숙해진 비대면 문화로 명절 음식을 준비하는 풍경도 많이 달라졌다. 예전에는 일손이 여럿이니 척척 차례상이 차려졌지만, 이제는 완제품을 구매해 차례상을 차리려는 이들도 많다. 반대로 홀로 집에서 맞이한 설날이 이제는 자연스러워진 '혼설족'의 모습도 찾아볼 수 있다. 명절 스트레스를 피해 긴 휴식을 취할 수 있도록 혼자 보내는 명절을 선택했다.

이에 [1코노미뉴스]는 설 명절을 맞아 가족과 친지를 만난 1인 가구가 명절 밥상에서 마주하는 다양한 이슈들을 귀담아들어 봤다. 또 혼설족이 되기를 선택한 이들이 설 연휴를 어떻게 보내는지 관찰했다.

여성 1인 가구 김 씨는 30대를 넘어가면서부터 연휴 때마다 결혼 질문을 받는다. 김 씨는 제외하고 또래 사촌들은 모두 결혼했다. 친척들의 관심은 혼자 미혼으로 남아있는 김 씨에게 쏠릴 수밖에 없다. 80대 할머니는 "여자가 결혼 안 하면 못쓴다"며 "밥은 할 줄 아냐"고 물으신다. 큰아버지 역시 "더 늦기 전에 결혼해라"고 하신다. 반면 결혼하지 않아도 괜찮다는 의견도 있다. 김 씨의 어머니는 "능력이 된다면 혼자 살아도 좋다"고 하신다. 밥상머리에서 대화를 듣고 있던 사촌 여동생도 "꼭 결혼해서 가족을 만들지 않아도 행복할 수 있다"며 "비혼 생각인 친구들과 한집에 모여 살고 싶다"고 말한다.

실제로 구인·구직 아르바이트 전문 포털 알바천국에 따르면 성인 3명 중 1명이 설 명절 스트레스를 받는 것으로 나타났다. 성인 3441명을 대상으로 '설 명절 스트레스를 받고 있는지' 조사한 결과 그렇다는 대답이 35.6%로 나타났다.

연령대로 보면 30대가 48.2%로 가장 많았다. 이어 40대가 47.4%, 50대가 38.8%, 20대가 29.1%이었다.

스트레스를 유발하는 원인 1위로 꼽힌 건 '취업·직업 관련 과도한 질문과 잔소리(47.5%)'다. 이어 선물·세뱃돈·용돈 등 비용 부담이 29.2%, 상차림·청소 등 명절 가사 노동이 28.8%, 연애·결혼 관련 과도한 질문과 잔소리가 27.7% 등이다.

설 연휴 해외여행 족도 크게 늘었다. 예전에는 고향집에서 2~3일간 머물며 가족들이 함께 시간을 보내고 윷놀이도 즐기는 문화였다면, 이제는 하루만 고향집에서 머물고 각자 집으로 돌아가서 쉬거나 가족끼리 여행을 간다.

서울 영등포구에 거주하는 1인 가구 유지원(30세, 가명) 씨도 친지들을 만나 차례를 지내고 점심 식사 후 바로 가족과 함께 일본으로 떠난다. 10일 오후에 오사카에 도착해 12일 저녁에 다시 서울로 돌아오는 일정이다. 유 씨는 "짧은 연휴지만 코로나 펜데믹 기간 동안 가족여행을 가지 못해서 보상 심리로 이번 여행을 결정하게 됐다"고 말했다.

실제로 인천공항공사와 한국공항공사는 지난 8일부터 오는 12일까지 닷새간 설 연휴 간 전국 8개 공항을 통해 해외를 오가는 여객을 124만7000명으로 추산하고 있다. 국제선이 집중된 인천국제공항에서는 총 97만6922명이 국제선 항공기를 이용할 전망이다.

이 기간 인천공항의 일평균 이용객은 19만5384명으로 지난해 설 연휴 일평균 여객 12만7537명 대비 53.2%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올 설 연휴 기간 이용객은 2020년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명절 연휴 실적 중 최고치가 될 전망이다.

집에서 휴식을 취하고 싶어 하는 혼설족의 하루도 관찰했다.

자발적 혼설족을 선택한 1인 가구 청년이 넷플릭스로 인기 영화를 즐기는 모습./ 사진 = 조가영 기자
자발적 혼설족을 선택한 1인 가구 청년이 넷플릭스로 인기 영화를 즐기는 모습./ 사진 = 조가영 기자

서울 노원구에 거주하는 1인 가구 강유진(24세, 가명) 씨는 오롯이 나를 위한 시간을 보내며 취업 준비로 지친 심신을 달랜다. 편의점에서 모둠전과 나물 등이 들어있는 명절 도시락을 구매해 명절 분위기를 내고, 그동안 보려고 아껴뒀던 영화도 실컷 본다. 연휴 중 하루는 백화점 팝업스토어를 즐기며 '혼자 놀기'에 도전해 볼 생각이다. 강 씨는 "자차가 없어 한 달 전에 버스표를 미리 예매하는 것부터 부담이었다"며 "마트나 편의점에 간편식 종류도 많고 명절 음식도 데우기만 하면 돼서 쉽고 가볍게 먹을 수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간편식이 명절 상차림의 대안으로 떠오르면서 수요가 크게 늘고 있다. 장기화한 고물가 영향과 나 홀로 설을 보내는 혼설족들 수요도 적지 않은 것으로 풀이된다.

SSG닷컴에 따르면 지난달 20~26일 기준으로 설 차례상에 쓰이는 간편식 매출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큰 폭으로 늘었다. 냉동 간편식 중에서는 전류(163%) 매출 상승이 가장 뚜렷했다. 프라이팬이나 에어프라이어로 간단히 조리해 바로 상에 올릴 수 있는 '부침명장 꼬치산적'과 '백반기행 소고기 육전' 등도 매출 상위에 올랐다. 만두와 전병류 매출도 지난해보다 93% 늘었다.

편의점에서는 1인 가구를 겨냥한 명절 간편 도시락 전쟁이 벌어질 전망이다. GS25는 명절 대표 메뉴인 소불고기, 잡채, 모둠전, 나물, 명태회 등 9찬 구성의 '새해복많이받으세용 도시락'을 판매한다. CU는 궁중식 소불고기를 메인으로 더덕무침과 고사리나물 등을 한데 모은 '설날 궁중식 소불고기 도시락'으로 공략한다. 세븐일레븐은 소불고기와 너비아니를 중심으로 명절에 많이 먹는 전과 나물로 구성한 '청룡해만찬도시락'과 두부전과 김치제육을 한데 모은 '청룡해모둠전&김치제육'을 판매한다. [1코노미뉴스 = 조가영 기자]

GS25 편의점에서 마주친 간편 조리가 가능한 오징어 김치전·오징어 해물파전./ 사진 = 조가영 기자
GS25 편의점에서 마주친 간편 조리가 가능한 오징어 김치전·오징어 해물파전./ 사진 = 조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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