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여섯 일곱 살 때쯤 일이다. 그 당시에 있었던 일들은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는다. 하지만 그날 밤 있었던 일만은 내 뇌리에 또렷이 각인되어 있다. 

어느 가을 저녁, 나는 갑자기 알 수 없는 고열로 신음하고 있었다. 얼굴은 불덩이처럼 새빨개졌고 정신은 아득해져 가쁜 숨을 몰아쉬었다. 어머니가 다급하게 건넛마을에 사람을 보냈다. 

"어서 가서 ㅇㅇ양반을 모시고 오게." 

ㅇㅇ양반은 두툼한 갈색 왕진 가방을 들고 의료 시설은 아무것도 없던 시골 마을을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진통제나 해열제 주사를 놓아주고 침도 놓아주던 무면허 의사였다. 

"ㅇㅇ양반이 먼 곳에 가서 오늘 밤에는 올 수가 없다는데요."

건넛마을에 다녀온 사람이 전하는 말이었다. 어느새 무겁고 짙은 어둠은 사방에 빽빽하게 내려앉아 있었다. 어머니는 축 늘어진 나를 안고 마당에 나가 대나무 평상에 반드시 눕히고 팬티만 남긴 채 옷을 모두 벗겼다. 잠시 후 피운 모깃불에서는 새하얀 연기가 어둠을 몰아내듯 모락모락 피어올라 마당을 채워나갔다. 올라오는 연기에 데운 노란색 싸리 빗자루가 내 얼굴과 가슴과 배를 지나 다리를 거쳐 발끝까지 훑고 지나갔다.

"나쁜 악귀야 썩 물러가라! 우리 성재 아프지 않게 썩 물러가라!"

어머니의 낮고 간절한 목소리가 뭉게구름 같은 연기와 함께 반복적으로 들려왔다. 까칠한 싸리 빗자루가 내 피부를 스치고 갈 때마다 내 몸은 찌릿함으로 꿈틀거렸다.  

"우리 내면의 세상은 신화적(Mythological)이다."

세계 각국의 신화 연구를 통해 영웅의 여정이라는 패턴을 발견하고 세상에 널리 알린 미국 신화학자 조셉 캠벨의 말이다. 

우리는 외부세계(Outer world)에서 살아가고 있다. 하지만 이 외부 세상을 살아가도록 우리를 이끌고 있는 것은 우리 내면의 세상(Inner world)이다. 신화는 판타지다. 판타지에서는 그 무엇도 일어날 수 있다. 신화의 세계에서 불가능이란 없다.

주술처럼 신비롭고 몽환적이었던 시간이 흘러가고 그 날밤 나는 깊은 잠에 빠졌다. 다음날 나는 가벼운 몸과 마음으로 일어났다. 지금 그때 그 장면을 떠올려 보면 피식하고 웃음이 나온다. 나는 문득 혼돈에 빠져있던 내 마음속 깊은 신화의 세계에 어머니가 치유의 스토리를 써주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생각했다. 

신화의 세계에는 우리를 치유로 이끄는 신비한 힘도 존재하지만, 괴물도 함께 살아가고 있다. 우리 내면 신화의 세계에 어떤 스토리가 갖고 있느냐에 따라 우리의 인생이 달라진다.

괴물에 의해 희생당하는 스토리를 갖고 있다면 고약한 삶이 펼쳐질 수 있다. 괴물을 내 편으로 만들어 삶의 소중한 동반자로 함께 삶을 펼치는 스토리를 갖고 있을 수도 있다. 신화 속 깊숙이 감추어진 자신만의 보물을 찾고 자신만의 신화를 만들어 어두운 바깥세상을 비추며 스토리를 현실로 만들며 살아가는 것이 영웅의 여정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당신의 신화는 안녕하십니까? 

당신의 신화에는 어떤 스토리가 있습니까?

나성재 C2P코칭컴퍼니 대표, (사)한국코치협회 코치
나성재 C2P코칭컴퍼니 대표, (사)한국코치협회 코치

[필자 소개]

나성재 코치는 알리바바, 모토로라솔루션 등 다국적 IT기업에서 다년간 근무하였고, 한국코치협회 코치이자, C2P 코칭 컴퍼니의 대표이기도 하다. 또한 NLP 마스터로 로버트 딜츠와 스테판 길리건의 공동 저서인 영웅의 여정(Hero’s Journey) 번역서를 출간했다. 현재는 멘탈코칭 워크숍과 영웅의 여정 워크숍을 진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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